
기대를 내려놓고 만난 영화
워낙 흥행한 영화라 일부러 기대하지 말자고 생각하면서 봤다.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걸 경험으로 알기 때문에, 마음을 최대한 비우고 앉았다. 그런데 막상 영화가 시작되고 나니 그런 마음가짐이 무색하게도 자연스럽게 빠져들고 있었다. 아이들과 함께 본 영화였는데, 보는 내내 화면에서 눈을 떼기가 어려웠다.
[왕과 사는 남자]는 2026년 설날 개봉한 장항준 감독의 작품으로, 유해진과 박지훈이 주연을 맡았다. 1453년 계유정난으로 단종이 폐위되고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르면서, 폐위된 단종을 완전히 제거하려는 한명회에 의해 단종은 한양에서 먼 곳으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. 강원도 영월에서는 먹고살기 힘든 형편에 유배 오는 양반을 모셔가기 위한 촌장들의 경쟁이 치열하고, 그 과정에서 광천골 촌장 엄흥도(유해진)가 단종과 함께하게 된다. 역사적으로 어디까지가 실제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에 대한 부분은 너무 깊이 다루지 않으려 한다. 그보다는 영화 자체가 주는 감동과 여운에 집중하고 싶다.
왕과 촌장,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
엄흥도는 처음부터 단종에게 충성을 바치는 인물이 아니다. 콩고물이라도 떨어질까 싶어 유배객을 모셔온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이다. 그런 그가 어린 단종과 함께 지내면서 조금씩 변해가는 과정이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. 처음에는 그저 귀찮고 불편한 존재였던 단종이, 시간이 지나면서 엄흥도에게 어떤 존재가 되어가는지를 유해진 배우가 말 한마디 없이도 표정과 몸짓으로 잘 전달해 준다. 무겁지 않게,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게. 그게 유해진이라는 배우의 힘인 것 같다.
단종 역할을 맡은 배우의 표정 연기
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단종 역할을 맡은 박지훈 배우의 표정 연기였다. 대사가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눈빛 하나, 표정 하나가 너무 많은 것을 담고 있어서 보는 내내 마음이 쓰였다. 왕의 자리에서 쫓겨나 영월 땅 청령포에 유배된 어린 단종의 처지가 배우의 연기를 통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았다.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전달하는 연기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.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그 표정이 한참을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.
마지막 장면의 충격
마지막 장면은 정말 충격적이었다. 스포가 될 수 있어서 자세히 쓸 수는 없지만, 두 인물의 감정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느껴져서 마음이 아팠다. 소리보다 침묵이, 말보다 눈빛이 더 크게 다가오는 장면이었다. 역사적으로 이미 알고 있는 결말임에도 불구하고, 영화 속에서 그 순간을 마주하게 되니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. 영화관을 나오고 나서도, 집에 돌아와서도 그 장면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.
기대를 내려놓고 봐서였을까, 아니면 영화 자체가 그만큼 좋았던 것일까. 아마 둘 다인 것 같다. 흥행했다는 사실이 괜히 흥행한 게 아니라는 걸, 보고 나서야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. 영화를 보고 난 뒤 아이들과 "왜 엄흥도는 단종을 끝까지 지키려고 했을까?"라는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. 역사책으로만 접했던 단종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나니 훨씬 생생하게 다가왔고,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조선 시대 역사에 관심을 보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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